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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명 J 영화 리뷰

by 축겜탐구 2021. 12. 5.

과거의 기억을 복구하고 싶은 자니

<코드명 J>의 세계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다. 서기 2021년,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극한에 달한 세계는 컴퓨터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지배함으로써 위기에 처한다. 컴퓨터는 인간의 사고와 감정까지 지배하며 추억까지도 이식되는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인류는 NAS(신경 감퇴증)이란 새로운 불치병에 시달린다. 주인공 카니는 일종의 정보 운반책. 머릿속에 컴퓨터 칩을 넣고 정보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임무다. 그 직업을 위하여 그는 과거의 기억을 지워야 했고,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기억을 복구하고 싶어 한다.

 

2시간을 지탱하기 어려워 보인다

온갖 상징과 기호로 가득 찬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소설가 로버트 깁슨과 포스트 모더니즘 화가인 로버트 롱고다. 로버트 깁슨은 '사이버펑크'라는 말을 만들어낸 SF소설 <뉴로맨서>의 작가로, <코드명 J>는 그가 1980년대에 생각해낸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22쪽에 불과한 단편이었고, 꼭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2시간을 지탱하기는 벅찬 듯 보인다.

 

사실 <코드명 J>의 내러티브는 엉망이다. "동사가 필요 없는 책, 즉 명사와 수식어로만 이루어진 책을 쓰고 싶다"는 말처럼 이 영화의 화면과 기호들은 볼만한 요소가 많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맥이 풀란다. 자니가 기억을 되찾으려는 이유도 없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악당들, 우연한 에피소드들로 점철된 이야기들은 어떤 논리 구조 없이 나열되기만 한다.

 

물론 볼만한 요소들은 꽤 있다. 화가인 로버트 롱고의 특기답게 40톤짜리 컨테이너를 크레인으로 50피트 높이에 매단 상상력이나, 세련되면서도 침울한 영상, 사이버스페이스의 현란함은 눈을 어지럽게 만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코드명 J>가 과연 깁슨의 말처럼 열린 구조, 관객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지는 의문스럽다. 모든 화면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하나의 그림이나 오브젝트처럼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이 영화의 영상은 대립항을 가지고 있다.

 

대자본이 만들어낸 '하이테크'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펑크 집단의 이름은 로테크이고, 여성은 인조 팔을 가짐으로써 남성의 보디가드가 된다. 기존의 모든 것을 역전하고, 대립항을 세우는 것. 설교사이면서 킬러인 칼은 그 대립항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자니는 지워진 과거의 기억을 회복함으로써 인간이 되고 싶어하고, 칼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육체를 포기하고 사이보그가 되어 인간과 기계의 복합 생명체가 되려 한다. 깁슨과 롱고가 보는 미래 세계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지워지고,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위협받는 사회다. 그래서 롱고는 펑크족 로테크, 기술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는 사람들을 대안으로 세우려 한다.

 

볼거리가 풍부한 코드명 J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코드명 J>가 대단히 복잡하고 골치 아픈 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리 큰 걱정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처음 150만 달러로 기획되었다가 할리우드와 결합하여 3천만 달러짜리 블록버스터가 되어버린 작품이다. 그런 만큼 볼거리는 가득하다. 로버트 롱고의 설치미술을 영화 속에서 잔뜩 볼 수 있고, 컴퓨터의 내부를 그린 사이버스페이스는 최첨단이다.

 

게다가 배우들을 보자. <코드명 J>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스피드>(1994)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배우 키아누 리브스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 이상으로 조역들이 화려하다. 설교사이자 킬러인 칼로는 돌프 룬드그렌. 로테크를 지휘하는 혁명 지도자 역으로는 유명한 래퍼 아이스 티, 그리고 자니를 뒤쫓는 집단의 우두머리 다카하시는 일본의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이자 배우 기타노 다케시다. 그러니 볼거리만으로 보자면 <코드명 J>는 천대받을 이유가 없다.

 

단지 문제는 한 가지라고 생각된다. 2시간 동안 별로 긴장감 없는 화면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 유식한 감독이 만든 영화이기에 널려 있는 기호들을 찾아가다 보면 건지는 것이 많을 것이다. 특히 사이버펑크나 포스트모더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그러나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이 싫다면 그저 단순한 SF액션이라고 생각하고 2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아마 그 편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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