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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 탈출 영화 리뷰

by 축겜탐구 2021. 10. 1.

원숭이가 지배하는 행성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 서기 2029년, 미 공군 대위 레오 데이비슨(마크 월버그)은 침팬지에게 소형 우주선 조종법을 가르치고 있다. 미지의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우선 침팬지를 보내서 안전을 확인한 후 인간이 임무를 수행하러 가기 위한 훈련이다. 자기 폭풍이 닥쳐오자 사령관은 침팬지를 내보낼 것을 명령한다 항로를 이탈하고 교신이 끊겨버린 침팬지를 찾기 위하여 레오는 직접 소형 우주선을 몰고 나간다. 레오 역시 자기 폭풍에 휘말리고, 낯선 행성에 떨어진다. 정글을 헤매던 레오는 정신없이 도망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철장 안에 가두는 것들은 바로 원숭이, 유인원이다. 이 행성의 지배자는 인가니 아니라 원숭이인 것이다. 원숭이들의 도시로 끌려간 레오는 인간을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테드 장군(팀 로스), 원숭이와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고 믿는 아리(헬레나 본햄 카터) 등 다양한 성향을 가진 원숭이들을 만난다. 구조대와 만날 방법을 찾는 레오는 함께 붙잡힌 인간들과 도시를 탈출한다.

 

1968년에 만들어진 찰톤 헤스턴 주연 <혹성 탈출>의 리메이크작 연출을 팀 버튼이 수락한 이유는,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겠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하지만 팀 버튼의 <혹성 탈출>은 실망스럽다. 다른 감독이라면 대충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신천지를 보여주던 팀 버튼의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졸작이다. <혹성 탈출>의 주어는 원숭이가 아니라 팀 버튼이다. 낡은 소재를 재생시켜 <배트맨>(1989)이라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낸 팀 버튼의 작품이라면 누구나 기대를 걸기 마련이다. 그러나 <혹성 탈출>은 1968년에 현재로 시간 이동을 해온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첨단 패션으로 장식한 어색한 느낌이다.

 

혹성 탈출의 매력

인간을 지배하는 원숭이, 시간여행, 잃어버린 고향 등 기본적인 주제는 과거와 다름이 없다. 인종차별, 아니 종의 차별 철폐를 부르짖는 원숭이도 나오지만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자각일 뿐이다. 그 정도의 '인식'은 1968년작에도 있었다. 인간은 원숭이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을 지배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용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어떨까. 원숭이가 인간을 애완동물로 키우고, 마차를 끌게 하고, 문지기로 쓴다면? 그걸 본 인간은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을까? 레오는 크게 반성하지 않는다. '미 공군'의 자의식이 확고한 레오는 자신의 부하인 침팬지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진 인간이다. 동시에 지구의 원숭이는 모두 동물원에 있다는 말을 태연하게 다른 원숭이들에게 내뱉는 인간이다. 애당초 팀 버튼은 어떤 전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떠들어대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뒤집어놓고 조롱하고 씹어대는 일이다. 레오나 아리를 영웅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게 <혹성 탈출>의 몇 안 되는 매력 중 하나다.

 

<혹성 탈출>에는 1천여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에게 유인원 분장을 시켜야 했다. 분장을 맡은 사람은 아카데미 5회 수상의 거장 릭 베이커. <배트맨> <맨 인 블랙>(1997), <그린치>(2000) 등에서 특수분장을 담당했던 릭 베이커는 <혹성 탈출>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원숭이들의 두꺼운 입과 전신을 뒤덮은 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감정과 느낌을 순간에 포착할 수 있다. 그냥 마스크를 뒤집어쓴 게 아니라, 마스크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성우가 정해지면 그의 인상이나 행동의 특징 같은 것들을 캐릭터에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캐릭터가 행동을 하고, 감정 표현을 할 때마다 관객은 실제 배우에게서 받았던 것 같은 느낌을 여전히 전달받는다. <혹성 탈출>에서도 마찬가지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할 때, 두꺼운 분장 위로도 슬픔이 스며 나온다.

 

혹성 탈출의 아쉬운 점

'원숭이 행성'이란 백그라운드 탓인지 인간의 활약은 아쉽다. 인생의 모든 죄악을 대신 사해주는 것처럼 인상을 쓰던 찰톤 헤스톤에 비한다면, 마크 월버그는 아주 평이하다. 그냥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군인이라고나 할까. 마크 월버그의 연기도 따라서 평평한 느낌이다. 레오와 함께 탈출하는 대나 역의 에스텔라 워렌은 페리 엘리스와 까르띠에 등의 광고 모델로 유명해진 신인배우. 1978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수중발레 챔피언에 등극했고,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까지 받았다. <공룡 100만년>(1966)의 라켈 웰치 못지않은 신체 조건을 지녔지만, 아쉽게도 팀 버튼은 그녀를 매혹적으로 잡아내지 않는다. 그냥 레오 주변의 '인간' 하나로 비친다고나 할까.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제대로 보기도 전에, 허공을 가로질러 그냥 날아가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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