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영화 리뷰
살아남은 자의 위대함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올 이즈 로스트>는 바다에서 조난을 당하고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다. 거대한 우주, 아름다운 지구를 배경으로 한 인간이 삶을 위한 극한투쟁을 벌인다. 인간이 얼마나 별것 아닌 존재인지 <그래비티>는, <올 이즈 로스트>는 말한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지도 말할 수 있다. 자연에서, 우주에서 생존은 그저 하나의 사실에 불과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그 사소한 목숨을 위해 언제나 악전고투하고 있다. 21세기의 우리는 대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생존하는 방법, 서바이벌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 이 영화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처음으로 우주비행에 성공했고,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인류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시절만 해도 1990년대, 늦어도 21세기에는 자유롭게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잘하면 달에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달 이외에는 발을 내딛지 못했고, 우주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을, 우주를 올려다보지만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공간인지 알지 못한다.
우주 공간의 리얼리티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를 보면 무엇보다 우주 공간의 리얼리티에 감탄하게 된다. 우주에 가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무중력의 공간에서 나의 몸은, 나의 감각은 어떻게 반응할까? 영화가 시작되면 지구에서 600킬로미터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우주인들이 보인다. 그 뒤로는 지구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수천, 수만, 수억 개의 별이 보인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가볼 수도 없는 광활한 우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발아래에 있고, 도시의 불빛이 반짝거린다. 너무나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우주의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망원경을 수리하던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럭) 과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는 폭파된 러시아의 인공위성 파편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기가 없기 때문에 조그만 파편도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 급하게 피하려 하지만 우주정거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스톤은 조난을 당하게 된다. 생각해보자.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다거나, 눈 내리는 겨울 산에서 길을 잃었거나, 우주에서의 조난은 더 위험하다. 어디가 위아래 인지도 알 수 없다.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다시 우주정거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산소량이 제한되어 있다. 스톤은 첫 번째 위기를 겨우 넘고 부서진 우주정거장으로 돌아오지만 탈출 수단마저 파괴되었기에 다시 중국의 우주정거장으로 가야만 한다. 스톤이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오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련이 남아 있다.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조난당한 스톤이 어떻게 지구로 돌아가는지를 그린 모험영화, 재난영화다. 알폰소 쿠아론은 우주에서의 조난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놀라운 리얼리티로 그려낸다. 쿠아론이 우주 재난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폴로 13>(1995)을 떠올렸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아폴로 13>은 1970년 달로 향하다가 사고를 당해 겨우 지구로 돌아온 아폴로 13호의 이야기다. 사고를 당하고, NASA의 관제 센터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아폴로 13호에서 지시를 따르며 귀한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런데 쿠아론은 <그래비티>에서 관제 센터나 스톤의 과거 장면 등을 넣으라는 영화사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래비티>에서 필요한 것은 스톤이 어떻게 난관을, 절체절명의 순간을 돌파해 나가는가였다. 쿠아론은 오로지 그 과정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영화사의 요구를 물리치고 무중력의 우주에서 펼쳐지는 필사적인 모험만을 그려낸 <그래비티>는 미국에서만 2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중력의 중의적 의미
<그래비티>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영화는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수단으로 지구를 돌아올 것인가를 보여준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의 모험은 그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볼거리다. 그리고 중력은 끌어당기는 힘이다. 지구에는 중력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지구에서 태어났고 살아왔다. 그런데 스톤의 과거는 우울하다. 홀로 키우던 아이를 사고로 잃었다. 그 후 스톤의 일상은 너무나도 무미건조했다. 차를 타고 직장에 가서 일을 하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온다. 삶의 '중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거나 그녀를 끌어당기는 현실적인 힘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주에 나온 스톤은 지구에 두고 온 무엇, 가족이나 연인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홀로 우주에 남겨진 스톤은 지구와 연락할 방도를 찾는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겨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어떤 언어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서로 의미를 모르는 말을 하던 지구의 남자는 자신이 키우는 개가 짖는 소리를 들려준다. 영화 속에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남자는 이누이트족이다. <그래비티>의 시나리오를 쓴 알폰소 쿠아론의 아들인 조나스 쿠아론은 스톤과 대화를 나눈 남자 '아닌강'의 이야기를 단편영화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목적도 없었던 스톤은 사고를 당하고, 아닌강과 대화를 나누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의지를 갖게 된다.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강한 마음을. <그래비티>는 스톤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그래비티'를 만나는,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기도 하다.
극장에서 3D로 <그래비티>를 보면 우리가 속한 우주가 얼마나 무한한 공간인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 <그래비티>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개인이 삶을 위한 극한투쟁을 벌인다. 거대한 우주, 지구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그것만으로도 위대하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안에는 생명이, 소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