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영화 리뷰
눈과 귀가 즐겁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당장 영화부터 볼 것을 권한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체험의 영화다. 물과 기름만이 권력의 원천인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매드 맥스> 3부작을 만들었던 조지 밀러 감독은 70이 넘은 나이에 다시 연출을 맡아 리부트를 시도한다. 80년대의 시대정신을 이어받아, 그 시절 우리의 죄악과 후회는 무엇이었는지를 거의 완벽하게 그려낸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무지막지한 자동차 추격전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을 귀와 눈으로 경험하게 한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빠져들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중학교 때 부산에 놀러 갔다가 남포동의 극장에 들어갔다. 서울과 달리 지정좌석제가 아니어서, 좌석 옆 벽에 기대서서 영화를 봤다. 폭주족의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을 쳤지만 결국 친구와 가족을 잃고 복수하는 맥스. 8기통 엔진의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장면을 보며 광기에 사로잡혔다. 단지 짜릿한 복수의 쾌감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걸고 질주하는 모습에 반했다.
2편은 개봉을 하지 않았기에, 4:3 화면에 맞춰 나온 비디오 테이프로 봤다. 1편과 정서는 동일했지만 시대가 확 바뀌어 있었다. 극저예산으로 찍었던 1편은 근미래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황량한 시골 마을일 뿐이었다.
2편은 아포칼립스 이후의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종말을 그린 영화도, 종말 이후를 보여준 영화도 이전에 있었지만 <매드 맥스 2: 로드 워리어>(1981)의 공간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기괴한 모습으로 튜닝한 자동차들만으로도 새로웠다. 그리고 유조차를 몰고 벌이는 추격적은 영화사에 남은 명장면이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완벽하게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온 자동차 추격전의 원형.
여성이 주도하다
<매드 맥스> 시리즈는 80년대 블록버스터의 대부분이 그렇듯 남자 영화였다. 마초 주인공이 등장하여 악당들을 물리치고 멋지게 떠나는, 아포칼립스 서부극. 하지만 실패작이었던 <매드 맥스 3>에서는 여성이 주요한 역할로 등장했다. 30년을 거쳐 돌아온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마초 남자가 불모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
맥스(톰 하디)는 과거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구하지 못한 아이들과 여성들. 그것은 기존 3부작에서 이어지는 흔적이고 흉터다. 기나긴 세월이 흘러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맥스는 결국 아무것도 구원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맥스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생존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남는 법이다.
포악한 지배자인 임모탄의 여인들을 구출한 것은 여성인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다. 머나먼 곳에서 납치되어 전사로 성장한 여성이 지배자에게 '사육'당하는 여인들을 구출하여 녹색의 낙원을 향하여 달려간다. 과거의 희망에 기대어.
하지만 낙원은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 존재한다. 맥스가 여성들을 설득하는 것은 저 어딘가에 있는 낙원이 아니라 되돌아가 싸워서 쟁취해야 할 현실이다.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하여 전사가 된 할머니들과 임모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점차 전사로서의 외양까지 갖춰가는 여인들과 함께 맥스는 돌아간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삭막한 세상에서 남성이 살아가기 위해 취해야 할 정당한 태도를 보여준다. 여성을 보호하고 지킨다. 그리고 여성은 스스로 일어서서 싸운다. 헐벗은 여인들이 처음 자태를 보여줄 때는 그야말로 사막의 장미처럼 황홀하지만, 싸움에 직접 나섰을 때 그녀들의 모습이 더욱 눈에 박힌다. 아름답다.
그 자체로 즐기자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우위를 따질 필요도, 어느 영화와 견주거나 폄하할 이유도 없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아날로그로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보여주는 하위문화의 거칠고 날선 요소들을 무작정 치켜세울 필요도 없다. 1980년대의 마초 문화, 헤비메탈, 불안과 공포, 여성주의 등을 몽땅 끌어안고 전력 질주하며 경계선을 넘어선 독보적인 영화다. 그것만으로도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