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그녀 영화 리뷰

축겜탐구 2021. 9. 27. 14:42

그녀와 만난 테오도르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한다. 부부의, 연인의 마음을 대신 헤아리고,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손글씨 편지를 보내준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편지를 보낼 대상이 없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고 결혼한 캐서린과 별거한 후에는 선뜻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어느 날, 컴퓨터와 핸드폰까지 모든 것을 관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OS1'을 구입한다. 사만다라고 소개한 '그녀'는 테오도르의 일상생활을 함께한다. "인공지능 운영체제로서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아는 직관적인 실체"인 사만다는 메일을 읽어주고 스케줄을 챙겨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매일매일 테오도르와의 경험을 습득하며 진화한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존재. 그런 존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는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영원한 숙제를 이야기한다. 테오도르는 늘 그녀와 함께한다. 사만다는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물론 육체가 없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인터넷 채팅과 폰섹스는 무엇인가. 영화가 시작될 때,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던 테오도르는 한밤중에 모르는 여인과 채팅으로 섹스를 한다. 사만다를 만난 테오도르는 친구에게 말한다. 매일 밤 침대에서 그녀가 자신을 안아주는 느낌이라고. 다정하고, 포근하고, 부드럽게. 현실의 존재가 아니라고, 가상이라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테오도르에게 인간이 느끼는 감각과 동일하다면.

 

육체가 없는 존재

정신과 육체,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의 사만다는 육체가 없는 존재다. 자신이 육체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모험적인 시도도 한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순수하고 완벽한 관계를 알게 된 여인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스피커로 사만다가 말을 하면서, 그 여인이 테오도르와 섹스를 한다는 것. 하지만 그건 가짜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로봇이라면 가능할까?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는 데커드가 리플리컨트인 레이첼, 어떤 여인의 기억이 주입된 레이첼과 사랑에 빠져 함께 떠나간다.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라도 육체만 있다면 '그녀'의 존재는 충분히 가능한 것일까? 육체가 없다는 사실에 고뇌하던 사만다지만 사랑이 깊어질수록 자유로워진다. 오히려 육체가 없기에 더 많은 자유와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단순히 <그녀>가 정신의 우월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스파이크 존즈는 <존 말코비치 되기>(1999)와 <어댑테이션>(2002)에서 '나'라는 존재를 확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었다. 개인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정신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를 보면 60년대의 히피 그리고 사이버펑크가 말하던 '의식의 확장'이 떠오른다. 어쩌면 인간은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의식은 육체를 초월하는 순간에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그런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성장하는 테오도르와 그녀

사만다는 성장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만다에게는 육체가 없기에, 수만은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고, 이미 죽은 철학자와 토론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단어들 사이의 무한한 공간'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녀의 성장은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한다. <그녀>는 딱 그 지점에 멈춘다. 사만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도 <그녀>는 별 관심이 없다. 이 여오하가 말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라져 버린 OS1을 사랑했던 그들은 말한다.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그녀>의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다면 스파이크 존즈가 보여주는,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사랑하게 되면서 만나는 세상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녀>는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감각적인 영화다.